계단 하나에 막히고, 관객이 없는 무대‥장애인 배우들이 말하는 공연의 현실
- 이슬기 기자
- 입력 2026.07.08 16:20
- 수정 2026.07.08 16:22
【에이블뉴스 이슬기 기자】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하 한국장총)이 배우, 접근성 매니저 등 공연 현장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온 장애인 당사자 4인이 공연을 찾고, 예매하고, 관람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겪은 경험을 직접 말하는 제2회 장애인 아고라 ‘우리에게도 커튼콜을’을 제작해 공개한다고 8일 밝혔다.
“코앞에 두고도 못 본 무대”, 계단 하나에 막힌 20년 차 배우
뇌병변장애인 배우 황철호 패널은 2007년부터 20년 가까이 무대에 서 온 현직 배우다. 그런 그도 공연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했지만 공연장 입구의 계단을 오르지 못해 결국 관람을 포기하고 돌아선 경험이 있다.
그는 휠체어 좌석 예매와 관련해 "논티켓이나 인터파크에서 예매할 때 휠체어석을 따로 얘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적응이 안 된다"며 별도 문의가 필요한 불편을 전했고, 예전보다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6:4 정도의 비율로 좌석이 제공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활동지원사와 함께 공연장을 찾았을 때 스태프가 자신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옆에 있는 활동지원사에게만 안내 사항을 전달했던 경험을 전하며, “언어장애를 가진 장애인들의 숙명”이라고 표현했다.
“전화를 받았는데 못 알아 듣는 거예요” 예매 시스템이 요구하는 ‘들리는 몸’
청각장애인이자 인공와우 착용자인 회사원 박훈빈 패널은 보고 싶던 공연의 예매가 오류로 취소돼 전화로 재확인해야 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기계음 소리고 상대방의 입모양이 안 보이는” 전화 통화는 청각장애인에게 큰 부담이라며, 자신이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매번 밝혀야 했음에도 필요한 확인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자막이나 수어통역을 요청했을 때는 예산과 공연장 사정을 이유로 거절당했고, 대안으로 공연 대본을 요청했으나 저작권을 이유로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아 “보고 싶었던 공연을 마음대로 보지 못한 상황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는 공연장에서 제공되는 자막 방식에 대해서도 “장애인 좌석 옆에 태블릿을 두고 나만 보는” 폐쇄형보다, 전광판을 통해 모든 관객이 함께 보는 개방형 자막을 선호한다며, 무대 상황에 맞춰 디자인된 개방형 자막이 “무대의 한 연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설명이 없으면 없는 것” 홈페이지 텍스트 한 줄에 갈리는 관람 여부
시각장애인이자 배우 출신으로 현재 공연 음성해설 자문을 맡고 있는 김혜영 패널은 예매 페이지에 “음성해설이 제공됩니다·제공되지 않습니다”, “수어통역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등 텍스트 정보가 있는지 여부로 접근성 제공 여부를 확인한다고 밝혔다.
그녀는 “그런 설명이 아예 언급이 없으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정보 부재 자체가 배제로 이어지는 현실을 전했다. 이동 과정에서도 동행인의 사정이 갑자기 바뀌어 공연장으로 가던 중 되돌아온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그녀는 음성해설에 대해 “대사로만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 표정, 행동, 조명, 무대 장치의 변화를 극의 흐름에 맞게 설명해 주는 것”이라 설명하고, 시각장애인이 사전에 무대 모형을 직접 만져 보며 구조를 파악하는 ‘터치투어’가 국내에서도 일부 시행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장애인 배우들이 놀고 있다” 접근성은 갖췄는데 관객이 없는 무대
저신장장애인이자 배우, 작가인 신광수 패널은 최근 공연 리플릿이나 포스터에 장애유형별 관람 가능 여부를 표시하는 픽토그램이 도입되는 등 정보 제공은 나아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대학로 소극장 등 기존 공연장의 좁은 좌석과 동선은 여전히 열악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예전에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모여서 만든 공연에 장애인 관객이 더 많이 왔는데, 지금은 배리어프리 공연을 잘 만들어도 막상 객석에는 장애인 관객이 없다”며, 접근성 설비를 갖춘 공연에 정작 장애인 배우와 관객이 배제되는 역설을 짚었다.
그는 “장애인 배우들이 놀고 있다. 배리어프리 접근성 공연에도 장애인 당사자가 함께 출연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배리어프리 공연 현장에서도 안내 스태프가 장애인 관객을 대하는 별도의 준비나 훈련 없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며, “접근성 스태프들도 배우들처럼 연습하고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설계와 관점이 결과를 만든다” 법과 일상이 함께 가야 할 접근성
사회를 맡은 한국장총 권재현 사무차장은 이날 논의를 “정보 접근성, 이동, 편의, 인식이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이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이어져야 한 사람의 사회 참여가 가능해진다”고 정리했다.
그는 올해 초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간해 제정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언급하며, 장애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개인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규정하는 법·제도적 전환이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고 짚었다.
한국장총은 “이번 방송을 통해 공연 접근성이 시혜적 편의 제공이 아닌 문화 향유권의 문제임을 사회적으로 환기하고, 접근성 매니저 제도화 등 정책 논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한편 제2회 장애인 아고라 ‘우리에게도 커튼콜을’은 오는 11일 낮 12시 복지TV에서 방영되며, 12일과 18일 낮 12시에 재방송된다. 방영 후에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다시보기가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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