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중에야 나오는 교과서, 그마저도 조각조각…시각장애인 학습권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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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에야 나오는 교과서, 그마저도 조각조각…시각장애인 학습권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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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인천 송암점자도서관 열람실에서 점역교정사 윤정식씨가 점자책 ‘화려한 유괴’ 본문을 읽어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해 1월 인천 송암점자도서관 열람실에서 점역교정사 윤정식씨가 점자책 ‘화려한 유괴’ 본문을 읽어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다른 친구들처럼 교과서를 제때 받아 봤으면….”

대전에 사는 중학교 1학년 김지민(가명)양의 꿈은 소박하다. 또래 친구들처럼 교과서를 제때 받는 거다. 이 꿈은 초등학교 6년은 물론 중학생이 된 지금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민양은 시각장애가 있다. 그는 28일 한겨레에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지만 점자로 된 문제집 구하기가 어렵다. 교과서도 진도에 맞게 받지 못해 늘 애가 탄다”고 했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지민양은 2학기 기말고사에서 국·영·수 모두 100점을 맞았다.

중간고사 코앞인데 교과서 없이 공부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권은 교과서부터 차별이다. 비장애 학생들은 12월 말에 이듬해 1학기 교과서를 받는다. 시각장애 학생들은 일러야 새 학기가 시작될 즈음인 그해 3월에 받는다. 그것도 한권을 ‘통’으로 받지 못한다. 단원별로 쪼개 여러 달에 걸쳐 받는다. 점자 번역부터 제작, 배포에 이르기까지 시차가 있어서다.

학교가 제때 신청을 하지 않으면 교과서는 더 늦어진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2학년 최승호(가명)군도 곤란한 경험을 했다. 승호군은 지난해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직전까지도 시각장애 학생용 음성 교과서를 받지 못했다. “학교에선 예산이 부족해 (음성 교과서 제작) 신청 의뢰가 늦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시각장애인용 교과서 제작비는 정부와 시도교육청에서 댄다. 학교의 무관심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집까지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점자나 음성으로 제작된 문제집 자체가 드물다. 시각장애인용 교과서를 제작하는 국립특수교육원이 추가 학습자료 점자 번역을 일부 지원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연간 지원 분량 상한이 있는 탓에 점자 번역 가능 문제집은 두권 정도다. 지민양의 어머니 이지연(가명)씨는 “시험 과목이 9개다. 최소한 주요 과목이라도 (문제집 점자 번역) 지원을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와 교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민양은 “특수학급 담당 선생님이 맹학교 출신이라 많이 도움을 준다”며 “점자로 만든 학습자료를 파일로 준다. 운이 좋다”고 했다.

불친절한 교과서와 인공지능

점자로 번역된 교과서의 품질도 장애 학생들을 힘들게 한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윤지원(가명)씨는 “초등 2학년인 아이가 교실에서 좌절감을 많이 느낀다”며 “저학년의 학습 특성을 좀 더 세심히 살펴 점자 교과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교과서는 그림이나 스티커로 표현되는 내용이 많은데, 점자 번역 교과서는 일일이 점자로 설명하고 있어 분량만 대폭 늘어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 (AI) 활용도 시각장애 아이들에겐 벽이다. 태블릿피시(PC)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는 수업이 늘어나고 있지만, 화면 읽기 등 시각장애 학생의 학습을 도와주는 보조 프로그램 개발과 적용은 더디기만 하다. 정부는 인공지능을 수업에 적극 이용하라고 권고하고 있을 뿐, 시각장애 학생을 위한 별도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시각장애 특수교육 우선순위 밀려

시각장애 학생에 대한 지원이 미흡한 것은 규모가 작아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어서다. 올해 4월 기준 시각장애 학생 수는 1678명으로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12만명)의 1.4% 수준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특수교육 정책이 (학생 수가 많은) 발달장애 학생에게 맞춰진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 학생용 학습자료 제작 인력이 부족한 것도 영향을 줬다. 국립특수교육원 관계자는 “최근 교과서 종류가 늘어 제작해야 할 종수도 그만큼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점자 교과서 제작업체가 적다. 제때 제작·보급하기 위해선 인력을 발굴하고, 용역 체계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립특수교육원이 내년 1학기 점자 번역을 의뢰받은 교과서는 7천권이 넘는다.

시각장애 학생용 교과서의 법적 지위 획득도 풀어야 할 과제다. 현재 점자 교과서는 법정 교과서로 인정되지 않아 신청·제작·보급에 이르는 과정이 엄격하게 관리되지 않는다. 초·중등교육법에 근거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을 보면, 학교장이 매 학기 시작 4개월 전까지 교과서를 주문하도록 하고, 출판사는 교육과정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적기에 공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점자·음성 교과서가 법적 지위를 얻으면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교과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출처 : 한겨레(https://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12369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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