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출입 막은 예식장...이 뉴스로 '공감'을 가르칠 겁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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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7 10:16
2026년에도 계속 되는 서글픈 풍경...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시민 필요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3월의 어느 주말, 충북 청주의 한 예식장에서 들려온 소식은 전국의 장애인 당사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지인의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기 위해 단정하게 차려입고 전동휠체어에 올랐을 한 하객. 그가 마주한 것은 화려한 조명과 꽃장식이 아니라, 예식장 직원의 차가운 제지였다. 24일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전동휠체어가 들어오면은 타일이 다 깨져요. 그래서 안전 위험성 때문에..."라며 출입을 막은 것이다.
사지마비 장애인에게 휠체어를 버리고 오라는 말은, 보조기구에 의존해 세상과 소통하는 그의 존재 자체를 문밖에 세워두겠다는 선고와 다름없었다. 예식장의 매끄러운 타일 한 장의 가격이 한 인간의 존엄과 참여권보다 우선시된 이 서글픈 풍경은, 2026년 대한민국이 마주한 '포용'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 입장을 거부 당했을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는 뉴스 장면. ⓒ MBC
옳은 일을 고수하는 사람들
이 사건을 접하며 나는 문득 먼 나라의 기업, 애플(Apple)이 고수해온 한 가지 원칙을 떠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인 애플은 최근 몇 년간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기묘할 만큼 한 가지 가치에 집착해왔다.
바로 '다양성과 형평성, 그리고 포용성(DEI)'이다. 사실 최근 많은 글로벌 기업이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이유로 다양성 정책을 슬그머니 철회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은 달랐다.
2025년 초 열린 주주총회에서 일부 보수 단체들이 다양성 정책 폐지를 요구하며 압박했을 때, 애플의 주주들은 무려 97%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이 요구를 부결시켰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주식 시장에서 '다양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이토록 강력한 지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밤하늘의 북극성이 항해사들에게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절대적인 기준점이듯, 어떤 경영 위기 속에서도 포기해서는 안 될 인류 보편의 가치가 바로 '포용'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애플은 이사회의 남녀 비율을 5:5로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성별과 인종에 따른 임금 차별을 0%로 만드는 '임금 평등 100%'를 수년째 실현하고 있다.
애플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을 읽어주는 '보이스오버' 기능을 고도화하고, 손을 쓰지 못하는 사용자를 위해 머리 움직임만으로 기기를 제어하는 '헤드 트래킹' 기술을 OS 기본 기능으로 탑재하는 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는 간단하다. 팀 쿡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이 옳은 일(Right Thing)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애인을 위한 기술 개발을 투자 대비 수익(ROI)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그들의 혁신을 이끄는 진짜 엔진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아껴야 할 것
특수교사로서 나는 매일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이 '북극성'을 찾으려 애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교실 구석에 머물지 않고, 비장애 친구들과 함께 부대끼며 자라나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통합교육의 본질이다. 하지만 청주 예식장의 사례처럼, 우리 사회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국어와 수학의 정답을 가르치기에 앞서, 타인의 신호를 읽어내는 '공감의 근육'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전동휠체어의 무게가 예식장 타일을 파손할 위협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외연을 넓히는 소중한 발걸음임을 가르쳐야 한다.
통합교육은 단순히 학교 안에서의 배려로 끝나지 않는다. 교육받은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 예식장의 주인이 되고, 기업의 CEO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 완성된다. 애플이 다양성을 통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듯, 우리 아이들도 다양성이라는 토양 위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시민으로 자라나야 한다.
타일은 깨지면 다시 붙일 수 있다. 하지만 거부당한 사람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보수할 수 없다. 2026년의 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북극성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아껴야 할 것은 예식장의 반짝이는 타일인가, 아니면 그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이의 빛나는 존엄인가.
이제 우리 교실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사회의 담장을 넘어 예식장의 문턱을 낮추고, 모든 휠체어 바퀴가 자유롭게 구를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길 소망한다.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진짜 혁신이자, 결코 잃어버려선 안 될 우리 시대의 북극성이다.
이 사건을 접하며 나는 문득 먼 나라의 기업, 애플(Apple)이 고수해온 한 가지 원칙을 떠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 중 하나인 애플은 최근 몇 년간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기묘할 만큼 한 가지 가치에 집착해왔다.
바로 '다양성과 형평성, 그리고 포용성(DEI)'이다. 사실 최근 많은 글로벌 기업이 비용 절감과 효율성을 이유로 다양성 정책을 슬그머니 철회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은 달랐다.
2025년 초 열린 주주총회에서 일부 보수 단체들이 다양성 정책 폐지를 요구하며 압박했을 때, 애플의 주주들은 무려 97%라는 압도적인 수치로 이 요구를 부결시켰다.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주식 시장에서 '다양성'이라는 추상적인 가치가 이토록 강력한 지지를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밤하늘의 북극성이 항해사들에게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절대적인 기준점이듯, 어떤 경영 위기 속에서도 포기해서는 안 될 인류 보편의 가치가 바로 '포용'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애플은 이사회의 남녀 비율을 5:5로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성별과 인종에 따른 임금 차별을 0%로 만드는 '임금 평등 100%'를 수년째 실현하고 있다.
애플이 시각장애인을 위해 화면을 읽어주는 '보이스오버' 기능을 고도화하고, 손을 쓰지 못하는 사용자를 위해 머리 움직임만으로 기기를 제어하는 '헤드 트래킹' 기술을 OS 기본 기능으로 탑재하는 데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는 이유는 간단하다. 팀 쿡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이 옳은 일(Right Thing)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장애인을 위한 기술 개발을 투자 대비 수익(ROI)의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모든 인간을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그들의 혁신을 이끄는 진짜 엔진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아껴야 할 것
특수교사로서 나는 매일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이 '북극성'을 찾으려 애쓴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교실 구석에 머물지 않고, 비장애 친구들과 함께 부대끼며 자라나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통합교육의 본질이다. 하지만 청주 예식장의 사례처럼, 우리 사회의 문턱은 여전히 높기만 하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국어와 수학의 정답을 가르치기에 앞서, 타인의 신호를 읽어내는 '공감의 근육'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 전동휠체어의 무게가 예식장 타일을 파손할 위협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외연을 넓히는 소중한 발걸음임을 가르쳐야 한다.
통합교육은 단순히 학교 안에서의 배려로 끝나지 않는다. 교육받은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 예식장의 주인이 되고, 기업의 CEO가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통합'이 완성된다. 애플이 다양성을 통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듯, 우리 아이들도 다양성이라는 토양 위에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시민으로 자라나야 한다.
타일은 깨지면 다시 붙일 수 있다. 하지만 거부당한 사람의 마음은 무엇으로도 보수할 수 없다. 2026년의 봄,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의 북극성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가 진정으로 아껴야 할 것은 예식장의 반짝이는 타일인가, 아니면 그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이의 빛나는 존엄인가.
이제 우리 교실에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사회의 담장을 넘어 예식장의 문턱을 낮추고, 모든 휠체어 바퀴가 자유롭게 구를 수 있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길 소망한다. 그것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진짜 혁신이자, 결코 잃어버려선 안 될 우리 시대의 북극성이다.
